Light Drawings 가벼운 그림

다시 그려볼 결심.

Anan아난 2024. 6. 5. 13:10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오랫동안 그림을 쉬었다. 

글을 쓴답시고 참 오랫동안 붓을 놓고 있었다.

솔직히 왜 그려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에 책을 한권 출간하고 글을 쓰는 작가로 전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 이름이 하필이면 [나는 화가다]이다.

이런 책을 내놓고 정작 본인은 그림에서 저만치 멀어져 있다니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독자를 기만하는 거냐!) 하지만 어쩌면 한 분야에 전문가라는 탈을 쓰는 순간 이상하게도 그것과 좀 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약간 뭐랄까 의무감으로 가져간다고 해야 할까?

오늘 책쓰기 코칭을 하는 지인과 연락을 했는데, 다른 사람의 글쓰기 코칭은 잘 할 수 있는데, 정작 본인의 글을 쓰는 것에는 저항감이 높고 매우 어렵다고 토로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림에 관련된 책을 내놓고 정작 그림을 통한 창작을 건실하게 이어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그림을 계속 그려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경제적인 효용이랄까, 직업적인 메리트랄까... 그런 것이 좀 (좀이 아니라 많이) 적은 직업이니까. 

 

'그래, 이제 난 글쓰는 작가야'

라는 생각을 하며 자위하기도 헸지만 마음 속 한 구석이 늘 뭔가 찜찜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보려고 한다.

 

 

 

첫번째 이유는 난 어쨌든 미술사와 그림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창작 작업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 맞다고 보았다. 그래야 나에게 무언가 한 수 배우겠다고 오는 그 분들 앞에서 면이 설 것 같다. 

 

두번째 이유는 좀 더 본질적인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그림은 내게 있어서 가장 나다운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창문 같은 거라고 본다. 오랫동안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듯한 느낌이 들때가 간혹 있다. 그림 그리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들이 나에게 그것을 다시 상기시켜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세번째 이유는 그냥... 좀 즐기고 싶어서? 예전에는 어떤 목표가 있었다. 전시회를 하겠다거나, 작품 카탈로그를 만들어보겠다거나,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항상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물론 그림과 글을 종종 올리는 연재를 하고 싶다는 작은 목표는 있다. 그냥 혼자 그린 그림을 나 혼자 보고 집에 쌓아두긴 아쉬우니까.

하지만 그 외에 무거운 목표는 두고 싶지 않다.
그냥 한번 즐겨보고 싶다. 또한  쓸데없는 짓의 기가막힌 유용성을 한번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다. 

 

 

다시 그림을 그려보기로 마음은 먹었는데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무늬만 작가인 나는, 정작 뭘 그려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복잡한 생각없이 그냥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서 택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대가들의 그림을 따라그려보기로. 조금 세련되게 표현하자면 '스터디'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나는 도서관 등지에서 미술사를 강의하기에, 그것들은 내게 친근한 소재이기도 하다.

 

사실 재작년부터 조금 끄적거리긴 했었다. 그러나 작심삼일의 황녀답게 그러다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적어도 30~40개 정도의 스터디를 해볼까 마음 먹었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이렇게 대놓고 선언을 하고는 있는데, 부디 그렇게 되길 바란다. 

 

이 쓸데없는 짓을 재미있게 한번 해보려 한다.

 

 

 

 

 

Fra Angelico의 원본

'Light Drawings 가벼운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텅 빈 마음으로  (2) 2024.06.19
21세기 아티스트의 고민  (0) 2024.06.18
4.25 Light Drawings  (0) 2024.04.25
4.23 pen drawing  (0) 2024.04.25
4.22 pen drawing (feat. 창조적 행위)  (0) 2024.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