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9

텅 빈 마음으로

창고 정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퍽 작은 면적의 창고가 발 디딜 곳이 없이 꽉 차 있었다. 나의 옛 그림들과 책들로. 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끌어 안고 살았다. 창고를 정리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몇번이고 정리해야지, 버려야지 생각을 했지만, 막상 옛 그림들과 물건들을 보면 ‘이것만은 절대 안돼…’ 하며 버리려던 물건들을 몇번이고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한번 큰 마음을 먹었다. 내 작품 세계가 계속 답보 상태인 것이 느껴졌고, 더 나아가 삶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과거의 방식들이 여전히 나를 붙잡아두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창고에 있던 오래된 그림과..

다시 그려볼 결심.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오랫동안 그림을 쉬었다. 글을 쓴답시고 참 오랫동안 붓을 놓고 있었다.솔직히 왜 그려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에 책을 한권 출간하고 글을 쓰는 작가로 전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 이름이 하필이면 [나는 화가다]이다.이런 책을 내놓고 정작 본인은 그림에서 저만치 멀어져 있다니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독자를 기만하는 거냐!) 하지만 어쩌면 한 분야에 전문가라는 탈을 쓰는 순간 이상하게도 그것과 좀 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약간 뭐랄까 의무감으로 가져간다고 해야 할까? 오늘 책쓰기 코칭을 하는 지인과 연락을 했는데, 다른 사람의 글쓰기 코칭은 잘 할 수 있는데, 정작 본인의 글을 쓰는 것에는 저항감이 높고 매우 어..

단청공부 -12

부채 작업이 생각보다 잘 나올 것 같지 않다. 지난 주에 먹지를 대고 그린 것이 잘 나오지 않아서 결국 연필로 다시 스케치를 했고, 그 위에 다시 흰색 석채로 덮었는데 뭐랄까... 지저분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가져와 차분하게 작업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기운이 빠진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니까 선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대단히 바쁜 것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할 일이 계속 있는 나날들인지라, 기운이 기진맥진할 때가 많다. 곧있으면 장구머리초 작업에 들어간다. 여러가지 도안 중 하나를 골라서 크게 옮겨 그리는 작업이다. 이번달은 건강을 잘 챙겨야 겠다.

단청공부 - 11

저번에 부채에 넣을 단청 이미지를 정했다. 단청 밑그림을 다시 손보고, 부채에 옮겼다. 스케치 밑에 먹지를 대고 옮겨 그려보았는데, 부채 위에 잘 나타나지 않아서, 결국 그냥 도안을 보고 붓으로 그리게 되었다. 그 전날 배탈이 나서 몸에 기운이 없는데, 내가 그리는 그림의 선에도 그런 힘없는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림은 역시 거짓말을 못한다. 아무튼 부채에 밑그림을 넣는 것을 대충 끝냈다. 여기저기 번지고 삐뚤삐뚤하지만,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지금 하는 고민은 부채의 칠보 문양을 컬러로 칠할까, 아니면 한 색으로만 (MONOCROME) 할까 고민중이다. 한색으로만 한다면, 청화백자처럼 파란색 한 색만 쓰려고 한다. 이번에 배운 교훈: 부채살처럼 고르지 못한 표면을 가진 제품에 그림을 옮겨 그릴때는..

Beyond Time

경주 감실부처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 감실부처는 한국에 있는 그 어떤 불상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늘 들곤 했다. 늘 바쁜 마음으로 돌아다니며 한 시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잘 하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은 이렇게 한자리에 오래 뿌리 잡고 앉아 있는 돌부처님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곤 했다. 정말 중요한 것, 소중한 것은 멀리 있지 않음을,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여기 있음을 이 돌부처님은 말해주는 듯 하다. 시간을 초월한 그 자리에서 (Beyond Time), 위대한 침묵 속에서.

Song of Heart

Song of Heart (초월의 노래) 온갖 유의의 법은 꿈같고 꼭두각시 같고 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응당 이렇게 관할지어다. -금강경 32장- 진짜와 가짜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시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illusion)인가? 그림 안의 깊은 바다 속은 무의식과 우주를 상징한다. 그것은 인간의 작은 이성으로 가둘 수 없는 광활한 공간이며, 이 곳에서는 기존의 옳고 그름, 미와 추의 카테고리가 무의미해진다. 이 곳에서 한 존재가 초월의 음율을 연주하고 있다. 그의 음악 속에서 모든 상像이 녹아내린다. *진분홍 (fuchia or magenta) 색에 대해서 그림 속 인물이 입고 있는 의상의 색은 진분홍색이다. 이 색은 삼사라의 상(像: the illusion of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