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Drawings 가벼운 그림

괜찮다. 괜찮아.

Anan아난 2024. 6. 24. 11:53

 

 


지난주 가족과 함께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2]를 보았다. [인사이드 아웃]은 주인공 소녀 라일리의 내면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이다. 기쁨, 슬픔, 분노, 짜증, 까탈스러움등의 감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나는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볼때마다 그들의 스토리 텔링 능력에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픽사는 매우 평범한 삶의 스토리를 비범하게 풀어나가며 그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이 굉장하다. 매상 비슷비슷한 갈등이 반복되는 K 드라마와 축을 달리한다. 삶의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를 애니메이션으로 아주 심플하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누가봐도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작년 이즘에는 엘리멘탈(elemental)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자주보는 관객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칭송하는 작품은 보고 싶어하는 편이라서 가끔 보는데, 그렇게 되다보니 적어도 일년에 한편 정도는 애니메이션을 극장에 가서 보게 되는 듯 하다.

이렇듯 돈을 주고 보아도 아깝지 않은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창의력을 경이롭게 보았고, 창작을 하는 작가로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애니메이션이 가진 자유로운 상상력과 경쾌함을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협소한 관점이라든지, 고정관념이 있는지 반추하게 된다. 
 
이번 영화에서는 전편 [인사이드 아웃]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한다. 여러 감정 중 '불안'이라는 감정에 나는 유독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극중에서 '불안'은 (이하 '불안이' 로 칭하자) 주인공 라일리가 꼬꼬마 시절엔 없던 감정이었지만 그녀가 사춘기에 도래함에 따라 등장한 감정이다. 
 
'불안이'는 말 그대로 모든 일을 불안해하며 모든 일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려고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일견 똑부러지게 보이는 그 모든 방책들은 결국 무리수를 두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불안이는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못해 결국 폭주하여 전체 시스템을 위기로 빠뜨리게 되고 나머지 감정들이 함께 힘을 모아 그녀의 폭주를 멈출 수 있게 한다. 
 
영화를 보며 불안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사고방식과 행위들이 내 안의 어떠한 매커니즘과 꼭 닮아있다는 느낌에 숨죽이고 영화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한발 떨어져서 내 안의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달까. 내 안에 그러한 면이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시각적으로 좀더 객관화해서 보게 된 기분이었다. 
 
나에겐 어떤 일을 할때 몰아치듯이 하려는 습성이 있고, 내 뜻대로 빠르게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초조하고 금방 짜증이 나는 경향도 있다. 고쳐보려고 하지만 이게 늘 쉽지는 않았다. 또한 일에 대한 계획을 짤대도 스스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욕심껏 짰다. (결국 실행하지도 못할 계획을 그토록 거창하게...)

내겐 효율성, 생산성을 극대화해서 '야무지게' 살아서 이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컸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돌이켜보면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쳐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불안이의 동분서주가 결국 모두 무리수로 판명되었듯 내 인생에서도 그러한 초조함과 성급함, 애를 쓰는 무리수 등이 내게 진정 이익을 가져다준 적은 별로 없다. (아예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살면서 재빨리 행동하는 것이 답이 될때도 있는 법이니.)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느낀 것은 나는 나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앎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고 뭐든 어떻게든 해보려고 행동으로 먼저 치달았던 것은 결과가 좋지 못했다. 계획이라는 것은 내가 쉽게 지킬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을 하고 세우는 것이지 그냥 무턱대고 행동 플랜을 짜서 뛰어드는 것은 좌절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난 배움에 느린 인간이라 그러한지 계속 되는 시행착오에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기 어려웠던 것 같다. 습성이라는 것은 미묘해서 자신이 어떤 습성으로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단박에 깨닫기도 어렵고 설령 깨닫는다해도 그 습관을 완전히 깨고 나오는 데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법이다.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일을 처리하려는 사고방식, 여유없이 타이트하게 일정을 잡고 일을 진행시키려는, 경제적 효율성만 우위에 두는 그런 태도를 조금씩 고쳐나가려 한다. 바로 그렇게 되진 않겠지만 일단 알았으니, 조금씩 조금씩 의식적으로.

내 안의 불안이에게 '괜찮다', '괜찮다', '조금 손해봐도 괜찮다', '다 잘 풀리게 될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조금만 더 여유롭게. 누가 쫒아오는 것도 아니고, 경주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어떤 일에 착수할 때는 바로 뛰어들지 않고 사전 검토를 하는데 여유있게 시간을 배정해보기로 한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내 자신을 쥐어 짜면서 하기보다 무리하지 않는 선을 꼭 지켜보기로 한다.

살면서 느낀 것은 내가 무리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병원비만 더 나간다는 현실이었다. 또한 무리를 해서 일을 진행하다보면 작업 자체가 기계화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어떤 감흥도 새로운 발견도 없이 그저 결과물을 향해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그 어떤 일이든 '과정'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중요성은 심오하다. 우리가 일을 하는 모든 이유는 사실 결과보다 그 과정 안에 스며들어 있다. 특히 사람의 마음과 기운이 직빵으로 실리는 창작의 영역은 더하다.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는 시대라 할지라도,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는 결국 인간의 피와 땀의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때문에 창작의 과정은 더욱더 존중되어야 한다. 
 
작업하는 시간만 유용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나의 비좁은 뜰을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하며 넓히고 함께 하는 행복을 늘려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성급하게 뭔가를 해결하려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시간을 여유있게 두고, 지나치게 애를 쓰지 않는 선에서 해보려 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이러한 삶의 방식이 그저 노동 강도가 낮은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생각보다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무의식적으로 냅다 일을 강행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 매순간 의식적으로 내 삶에 내가 개입을 해야 한다. 내 스스로의 상태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을 하는 속도가 늦추어졌고, 덕분에 결과물의 양도 다소 줄긴 했지만, 내 삶이 조금 더 건강해진 것 같아서 좋고 이 방식이 길게 보았을 때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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