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Drawings 가벼운 그림

멈추고 스스로 사유하는 시간

Anan아난 2024. 6. 24. 10:00

고등학교 시절에 그린 각면 아그립파 연필 소묘이다. 참 주구장창 그려댔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똑같은 그림을 같은 방법으로 그리는 이런 연습이 다소 허무해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준을 내려놓고 보면 이 자체로 의미가 있다. 연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느낌이 어떤지 실컷 경험해보는 기회였으니까. 디지털 기기가 많이 익숙해진 오늘날의 어린 아이들에게 연필이란, 연필 드로잉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있을까?

 

 

 


정보, 지식보다 중요한 것.
그것들을 찾아 헤메고 습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을 멈추고 스스로 사유하는 시간이다. 

 

 

 

[A.I x 인간지능의 시대]를 집필한 김상균 저자는 카이스트 대학생을 위한 인공지능 수업에서 연필과 종이만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인공지능에 관한 수업이라면 대단한 컴퓨터와 로봇이 즐비한 환경에서 공부할 것 같은데, 그와 대비되는 스토리가 흥미롭게 들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술이나 외부의 정보를 활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엄청난 도구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관건인데, 자신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문득 돌이켜보면 인터넷이 세상에 나온 이후로 나홀로 골똘히 생각에 잠기거나 무언가를 상상해보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지금의 IT 전문가들은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사고하는 일 자체를 맡김으로서 인간 고유의 창의성이 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사실 이 현상은 인공지능이 나오기 이전, 그러니까 인터넷이 보편화 됨으로서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일이었다. 어떤 것이 궁금하면, 책을 찾아서 읽거나, 상상을 해보는 대신 바로 검색엔진을 켜면 온갖 동영상과 이미지가 넘쳐나기에 굳이 스스로 사고하거나 만들 필요가 없다. 유튜브의 수많은 영상들과 매년 쏟아지는 드라마와 영화들을 보라. 우리가 눈을 감고 더 행복한 상상, 흥분되는 상상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다양하고 지독하게 많다. 인공지능은 이런  과정을 좀더 매끄럽게 만들고 가속화 시킨 것이라고 본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 상상하지 않아도 이미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일상에 깊숙히 침투해있다. 비단 물건을 팔려고 만든 광고 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라이프 스타일까지 볼것, 따라할 것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김상균 저자의 말대로 조금 불편하더라도 디지털 기기가 없는 환경에서 종이에 뭔가를 스스로 적어보고 사유하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 된다.

 

 

컴퓨터 쓰는 것에 너무 능숙해져서, 지금 이 글조차 컴퓨터로 쓰고 있지만 종이에 쓰는 것과 컴퓨터를 활용해서 쓰는 것은 꽤나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종이에 글을 쓰는 과정에는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있다면 모니터를 켜고 키보드를 잡는 순간 외부 세계의 자극에 반응하고 바깥의 정보를 찾아다니는 사냥꾼의 본능이 깨어나기 때문일것이다.

 

 

우리는 초연결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연결되고 싶은 것이 그냥 대중의식(mass conciousness) 은 아니라고 본다. 고차원적인 의식과 연결되길 바라고 내 안의 울림을 느껴보고 싶다면 조용히 마음 속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적어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는 '명상'을 통해 이런 과정을 경험하고 누군가는 써내려가면서, 누군가는 홀로 걷는 산책을 통해 이런 순간들을 경험 할 것이다. 나의 작은 바램이 있다면 명상이라는 것을 꾸준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인데, 이게 쉽지가 않다. 아무것도 안하는 10분, 15분 정도를 만들기가 어렵다. 바빠서가 아니다. 그 정도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일이 익숙하지가 않다. 이것저것 하느라 바쁜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명상이었다. 

 

 

멈추고 들어보고 싶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을 거두어 종이를 바라보고 펜을 다시 잡아보고 싶다.

그 작은 순간들을 소중하게 일구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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